어제 오후에 같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박교수님댁을 찾아 갔다. 지난 주에 몸이 편챦아서 교회에 못 나오셨다기에 건강이 어떠신지 보고,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심방했다. 지난 번에 두 번이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때의 기억을 참고로 찾아가면 되리라 생각했으나 가는 도중에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한참 고생을 했다. 결국 박교수님 댁에 전화를 드려 길을 물었는데 교수님이 직접 차를 몰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오셨다. 교수님은 다행히 건강하셨으나 다리가 불편하신지 조금 절고 계셨다. 80이 넘으신 나이에도 늘 건강하셨는데 지난 주 부터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 교수님 댁에서 권사님이 차려 주신 맛있는 식사를 나누고,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권사님께서 교수님의 형제분들 이야기를 재미 있게 해 주셨다.
교수님 집을 떠나면서 오래 전에 돌아가신 친할머니 생각이 났다. 지금은 고향 뒷 동산 양지바른 곳에 누워 계신다. 내가 고향 큰 아버지 집에 갈 때 마다 군불을 때고 난 후에 고구마를 구워서 사촌형제들 몰래 내 손에 쥐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90이 넘게 이 세상에 계셨셔니 천수를 누리신 셈이다. 할머니의 인생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가족 중 누구도 할머니의 삶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게 보여주신 사랑은 아직도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얼마 전에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을 읽었다. 모리라는 교수가 근육이 사그라드는 중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을 그와 제자가 대화의 형태로 자세히 묘사한 책이다. 모리는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였다. 죽음은 탄생 처럼 인생의 중요한 한 과정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시작과 끝이 있다. 그것은 모든 피조물의 운명이다.
매일 아침 나에게 주어진 남은 날이 오늘 하루 뿐인 것처럼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인생을 의미있고, 소중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이 세상에서 보낸 즐거운 날들에 대해 감사를 드리면서 주님이 예비해 두신 더 좋은 본향을 향해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한 인생일 것이다.
Friday, August 18, 2006
Tuesday, August 01, 2006
속도 보다는 완주에 목표를 두라
40대는 마라톤에 비유하면 막 반환점을 돌아서는 시기이다. 지금껏 살아온 인생의 탄력으로 무리하지 않고 제 속도를 유지하면 완주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듯 하다. 문제는 속도에 촛점을 맞출 때 발생한다. 속도를 의식하다 보면 몸이 긴장되고, 자신의 페이스를 놓치기 쉽다. 그러다 보면 도중에 지쳐 포기하게 된다. 속도 보다는 완주에 목표를 두고 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40대의 삶의 지혜이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원희룡씨가 '서브 쓰리를 꿈꾼다'라는 마라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아마츄어 마라토너로서 42.195Km를 3시간 안에 주파한다는 것은 대단한 위업이다. 시간당 14Km의 속도는 1 Km를 4분 30초의 속도로 달리는 것과 같다. 5Km 또는 10Km를 Km당 4분 30초로 달리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지만 마라톤 전 코스를 그와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아마츄어 마라톤에서 우승하려면 적어도 2시간 30분대 이내의 속도여야 한다.
그런데 원의원은 왜 서브 스리를 꿈꾸는가?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 사람들은 큰 성취감과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서브 쓰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브 쓰리가 아니면 또 어떤가? 오늘 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속도로 달리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속도가 그대로이면 또 어떤가? 오늘도 어제처럼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한 것이 아닌가? 40의 나이에 삶의 사는 지혜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지족의 삶이다. 자신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하고 있는 일, 가족, 취미생활 등에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브 쓰리가 아니라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마라톤 전코스 완주를 위해, 아니 풀코스 완주가 어렵다면 하프코스 완주를 위해 오늘도 즐겁게 신발끈을 고쳐매고 나서 보라.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원희룡씨가 '서브 쓰리를 꿈꾼다'라는 마라톤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아마츄어 마라토너로서 42.195Km를 3시간 안에 주파한다는 것은 대단한 위업이다. 시간당 14Km의 속도는 1 Km를 4분 30초의 속도로 달리는 것과 같다. 5Km 또는 10Km를 Km당 4분 30초로 달리는 것은 그나마 쉬운 일이지만 마라톤 전 코스를 그와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아마츄어 마라톤에서 우승하려면 적어도 2시간 30분대 이내의 속도여야 한다.
그런데 원의원은 왜 서브 스리를 꿈꾸는가?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 사람들은 큰 성취감과 희열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서브 쓰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브 쓰리가 아니면 또 어떤가? 오늘 보다 내일은 좀 더 나은 속도로 달리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속도가 그대로이면 또 어떤가? 오늘도 어제처럼 건강하게 달릴 수 있는 것 만으로 행복한 것이 아닌가? 40의 나이에 삶의 사는 지혜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다. 다른 말로 지족의 삶이다. 자신에게 관대할 필요가 있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 하고 있는 일, 가족, 취미생활 등에 시간을 적절히 배분하면서 삶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서브 쓰리가 아니라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마라톤 전코스 완주를 위해, 아니 풀코스 완주가 어렵다면 하프코스 완주를 위해 오늘도 즐겁게 신발끈을 고쳐매고 나서 보라. 인생이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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